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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선교편지
관리자  (Homepage) 2007-11-06 05:12:40, 조회 : 2,133, 추천 : 618

남아공 선교의 동역자이신 사랑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그 분의 사랑과 평강이 있기를 바라며 문안을 드립니다.
이제 이곳 남아공은 영하로 내려가서 많은 사람들을 동사하게 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고또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유난히 추웠던 겨울은 지나고 이제는 새 싹이 돋고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파릇한 새 싹을 보며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겨울은 겨울인데 낮에는 덥다는 느낌을 주고 밤에는 엄동설한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비가 오면서 얼어 버리는 그래서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를 지을 때 운두령을 수없이 넘나 들었지만 그 때에도 보지 못했던 나의 일생에서 그리 흔하게 보지 못하는 특이한 남아공의 얼음 꽃을 보았습니다. 마치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을 급속냉동을 시킨 후에 물을 서서히 뿌리며 얼려서 투명한 얼음 안에 생생하고도 아름다운 꽃이 갇혀 있는 그런 꽃입니다. 여전히 겨울은 겨울인데 “유난히”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만큼 유별났던 겨울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에게 감사함하고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고 고백해야 할 것은 그 동안 이해하지 못할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희에게 맡겨주신 사역들이 이제는 든든한 뿌리가 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집 앞에 있는 텃밭에 뿌린 씨앗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겨울이 오면 시들해 지는 것이 아니라 사시사철 깊은 뿌리로 인해 항상 든든하게 서 있는 큰 나무같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고통들이 있었지만 삼위 일체 하나님의 한 없는 사랑과 은혜, 그리고 저희 사역을 위해 매일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는 존귀하신 여러분들로 인해 이러한 시간들이 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는 이은원 선교사가 중한 병에 들어 이곳 대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죽기로 각오하고 한국을 떠났는데 저가 사역하던 교회조차 후원을 하지 않았던 때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이 없어 굶어 보기도 했고, 아이들의 학비가 없어 일정 기간 학교도 다니지 못했습니다. 매일 수리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것만 갖춘 자동차가 있었으나 연료비가 없어 먼 길을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사역에 사용할 음식이 없어서 마당에서 버너에 불을 켜고 물만 끓이고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굶기보다 먹는 날이 더 많았고 공부한 날이 더 많았으며 충분한 연료로 힘차게 사역한 날이 더 많았고 인간 천사를 보내어 먹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주기도 했습니다.

남아공의 낙후된 흑인 동네에서 굶고있는 흑인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이 주목이 되어 정부의 백인 담당자로 인해 온 가족이 추방 대상이 되어 감옥에 들어 갔으나 다시 풀려 나오게 되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당시 최소한 1 인당 1억 5천 만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하고 이국 땅에 사는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며 그 소송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건으로 인해 저희에게 잘못한 담당자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정부측과 아주 좋은 관계가 형성이 되어 학생 초청 비자 문제가 별 탈없이 진행되고 있으며저희 가족이 영주권을 받게 된 것도 이례가 드문 담당 부서의 권면로 시작하게 되었고 저희 신학 대학의 교육부 인가 신청도 그러한 영향으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저가 알지도 못하는 분들, 저가 알고 있으나 남아공 시골을 그리 쉽게 오실 분들이 아닌데 어떻게 아셨는지 저희 주소를 손에 쥐시고 손수 이곳에 오셔서 격려해 주셨고 바람이 불면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흙먼지가 하늘을 덮는 그런 곳에서 사역하는 저희들을 보시고, 닳아서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저희를 모습을 보시고 말없이 우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방문하신 분들이 저희가 살고 있는 집에 오셔서 먹을 것이 없는 부엌을 보고 물끄러미 보시는 분들도 있었고 무조건 음식을 사러 나가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선교사로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게 왜 이렇게 궁상을 덜며 사느냐”고 핀잔을 받기도 했고 가난한 흑인들을 먹일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선교사님부터 먹으라는 말도 들었고 “전혀 타산이 맞지 않는 구제 사역은 왜 하고 있느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가 끌고 다니는 자동차를 운전해 보고는 이것도 자동차냐고 비웃는 인간도 있었습니다.

한참 사역이 부흥되어 여러 사역들이 일어날 즈음에는 저희가 후원을 받기 위해 겉으로는 사역을 많이 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하는 사역이 없다는 말과 당시 생후 7개월짜리 남자 아이와 2살짜리 여자 아이를 입양한 후에는 돈을 받기 위해 키우고 있다는 말과 사역 선전을 위한 것이라는 말들 남아공 한인들에게 듣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저 자신이 스스로 입양했다고 먼저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떤 목사는 이은원 선교사의 인품으로 보나 성품으로 보나 아이들을 입양할 그런 사람들이 못되며 그 말은 거짓이거나 입양이 아니라 잠시 키우는 것인데 입양했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고 저가 운영하는 영어 학교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학생들 부모님들에게 “그곳은 영어 공부할 곳이 절대로 못된다”고 말을 해서 부모님들로부터 “당장 한국으로 들어 오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입국한 학생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5번 째 교회를 세우고 담임 목사로 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성경 공부와 365일 쉬지 않고 새벽기도를 시작했는데 어떤 선교사님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외국에 나와서 편하게 살지 왜 여기까지 나와서 그리 궁상을 떨며 사느냐?”고 핀잔을 주었고 어떤 선교사는 나에게 선교가 무엇인지 배우겠다고 자기 발로 찾아 와서 몇 주일 사역하다가 아이들을 위한 사역을 할 예정인데 주일 학교 사역을 하고 싶다기에 교회 사역자들과 상의한 후에 그에게 허락했더니 다음 주에 와서는 자신에게 쉽게 주일학교 사역을 허락한 저의를 알겠다며 이 선교사의 평이 좋아 조금 도와 주려 했는데 내가 돈이 좀 있는 줄 알고 벌써 돈을 바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 사역하지 않겠다”며 화를 내며 돌아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는 우리와 같이 사역하고 싶다고 이곳을 와서는 인간같이 살지 않고 일만 하는 이은원 선교사같이 사역은 하지 못하겠다며 자기 발로 이곳을 떠나 갔으면서도 이은원 선교사가 쫒나 내서 할 수 없이 자신들이 떠났다고 소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저가 이곳에서 신학 공부를 하지 않은 AIC 계열의 원주민 목사님을 대상으로 저희 신학 대학의 입학에 특혜를 주면서 까지 8년째 교회 성장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사역하고 있는데 유독 저희 세미나를 가면 큰일난다며 흑인 목사님들을 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일본의 한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M-Div를 받고 순복음 교단에서 목사안수받은 사람인데 저가 운영하는 세미나에 대해 “장로교의 조직 신학과 교리는 잘못되어 아주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지 말고 현실에 맞는 순복음 조직 신학을 나에게 배우라”고 하면서 “이 목사 말을 들으면 망한다”고 말을 퍼뜨려서 예전에는 보통 15명 정도가 참석했지만 올해는 그 지역에서 저희 세미나를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는 이은원 선교사가 지식이나 학식으로 원주민 목사님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대변하고 가르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당할 때마다 저는 늘 험한 십자가를 생각해야 했고 또 깊은 인내를 해야 만 했습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너무 억울하고 힘이 들어 하나님 앞에서 때로는 땅을 치며, 때로는 울면서 기도하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너무 많고 그런 분들의 기도로 인해 내가 이곳에서 사역할 수 있고 존재해 간다는 것을 느끼며 다시 일어 설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은혜로 사역도 안정되어 가고 그 동안 지도자들을 양성해서 모든 사역들이 원주민 사역자들 중심으로 운영되어 가고 있기에 앞으로는 그 동안 기도하며 준비하던 여러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고 유치원을 시작하고 원주민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저희 신학 대학의 분교를 설립하여 남아공과 아프리카 곳곳에서 사역을 일으키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년도 부터는 저희 신학 사역의 일부가 이곳의 도심지로 나가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 동안 운영해 오던 신학 대학이 흑인들만 살고 있는 마을에서 운영되었기에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기 원하는 목회자들이나 젊은이들이 교통편이 용이한 곳으로 옮겨 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재정적인 문제와 운영에 필요한 경비가 만만치 않아 많이 망설였지만 이제는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며 이 일들을 추진할 것 입니다.

또한 2008년부터는 선교사 현지 훈련 차원에서 많은 예비 선교사, 사역자들이 오게 되고 ELS(영어 학교)에는 벌써 많은 학생들이 신청하였습니다.
11월 15일부터 12월 20일까지 최정미 선교사가 8년 동안 한국을 가보지 못한 이은혜와 이바울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최정미 선교사는 2008년에 공부할 영어 학교 신청자들을 면접하고 합격자에게 초청장을 주게 되고 또 우리의 다른 사역을 위해 단체나 교회를 방문하여 저희 사역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질 것 입니다.
[제8회 교회 성장 세미나]
제8회 교회 성장 세미나는 4분의 한국인 강사 목사님들을 모시고 새벽 5시부터 밤11시까지 4박 5일을 저희 지역에 있는 호스텔에서 열었습니다.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 인근 지역에서 참석한 65명의 원주민 목회자들은 시간 시간마다 들리는 귀한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은혜들을 받았고 올해에는 미국 훌러에서 공부하신 목사님께서 상담학을 강의해 주셔서 많은 원주민 목사님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시작하기 2일째 밤부터 쏟아지는 강한 비 바람으로 인해 정전이 되었으나 새벽 기도회나 저녁 강의 때에는 몇 개의 촛불을 의지해서 강의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올해도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원주민 목사님들에게 저희 교회 성장 세미나를 3번 이상 참석하면 학력에 관계없이 저희 신학 대학을 입학하는데 특혜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도부터는 1년에 2번 이상 원주민 목회자들에게 유익한 이런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 온 저의 삶을 보면 주님께서 저의 모든 일을 관여 하실 때는 성급하게 점프를 시켜 주지 아니하시고 꼭 한 걸음씩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보면 저가 원하고 소원했던 일들은 넘치도록 이루어 주셨다는 것 입니다.
아멘!!

[기도 제목]
1.        이은원 선교사의 가족과 사역자들을 위해
2.        저희가 섬기는 모든 사역에 성령의 역사가 뜨겁게 일어 나도록
3.        2008년도 영어 학교에 선교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도록
4.        시내 중심에서 신학 강의실을 운영하려 합니다. 임대가 순탄하게 되고 운영에 필요한 재정의 후원자가 생기도록 (이곳의 임대건물 대부분이 이곳 회교도 사람들의 소유이기에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5.        저희 사역의 하나인 신학 대학의 반듯한 건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6.        선교 훈련생들을 위한 중형 버스를 1월 이전에 꼭 구입할 수 있도록
7.        11월에 한국을 방문하는 가족들에게 일생에서 가장 유익하고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8.        2008년도에는 이은혜와 이바울이가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그에 필요한 모든 재정과 필요들이 충분히 채워 지도록
9.        이은원 선교사가 최정미 선교사가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남아공에 남아 있는 어린 두 자녀의 Care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험한 십자가를 자랑하며 남아공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은원, 최정미, 이은혜, 바울, 사라, 그리고 요한이 드립니다.

e-mail: ywamsa@yahoo.co.kr (대표), ywamgk2els@yahoo.com (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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